Critique
Critique
사라져가는 것과 붙들고 싶은 것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공간 혹은 장소가 있다. 유년시절의 인상이 저당 잡힌 자리 또는 어떤 사건이 의식에 안착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곳 말이다. 그래서일까. 공간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예술가에겐 특히 그렇다. 언표의 상관자로서 위치하기 때문이다.
작가 표현우의 작업은 공간을 밑동으로 한다. 엄밀히 말해 재현공간이다. 재현 공간이란 틀의 경계에 의해 형성된 공간을 말한다. 작가는 그 재현 공간과 공간 사이에 예민한 감성과 섬세한 펜으로 퇴색해가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심는다. 지난해 3기를 맞이한 2020년 평화문화진지 입주작가 프로그램의 여섯 번째 결과 보고 전(展) ‘사라져 가는 것들’도 그 중 하나이다.
작가는 해당 전시에 버려지거나 잊히는 장면들을 담은 작업을 여러 크기로 선보였다. <상실의 저편>(2020)에서처럼 재개발로 둥지를 떠난 이들의 남겨진 흔적들을 좆거나, <그날, 그곳에서>(2020)에서마냥 유년의 회상을 소환하기도 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녹아 있는 <골목길과 고양이의 이야기(부산 범일동)>(2016) 및 시공의 결을 느낄 수 있는 <성곽마을 이야기>(2018)도 마찬가지이다. 제작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과거의 작업인 <골목길과 고양이의 이야기(서울 이화동)>(2015)와 <골목길과 고양이의 이야기(서울 이화동 계단)>(2015)을 잇는 작업이다.
동일한 흐름의 작업을 한지 5년여. 표현우의 작업은 일상에서 멀리 있지 않은 소박함과 서민성이 기호처럼 새겨져 있다. 작가의 말처럼 “현실적인 삶으로 대변되는 도시에서 벗어난 변두리 마을의 골목길을 들여다보고 담겨진 이야기”가 배어 있으며 “체험적 공간인 도시가 아닌 삶의 흔적과 소리가 남겨지고 만들어지는 곳에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골목마다, 집집마다 밴 이야기도 중요하겠으나 필자가 주목한 것은 두 가지이다. 우선 그의 작업엔 기 언급한 서민성이 투영되어 있다. 동시대에서의 서민성은 어쩌면 과거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그의 작업들은 하나같이 한국적 보편정서를 반영하면서도 정연한 미적완성도를 내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미적완성도는 사물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시선에서 개간되고 세밀한 펜의 동세로 확연해진다. 작가는 특유의 세밀함을 통해 단순한 노스탤지어가 아닌, 감각적 체험을 배경으로 한 시공의 콜라주를 생성한다.
실제 그의 그림에 배어 있는 시공은 희석되어버린 가시성을 들춰내며, 교류되는 세월과의 간극, 기억과 실체라는 양자적 관념 속에 존재해온 이미지로 재탄생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개념적으로 결국 하나의 사변적 풍경으로, 경험으로, 기억이 바라지 않은 존재 등의 명사를 평평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의 작품에 내재된 특징이 된다. 즉 세세하게 덧칠된 주관적 조작의 흔적과 과정을 통해 펜의 재현적 가능성을 되살리면서도 가시적 실체와 시간의 층위를 접합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각 아래 각인되는 유무형의 그 어떤 것이 시간의 자국과 매우 강하게 교차한다는 것, 망막으로 확인되는 물리적 환경 자체를 오늘로 불러들이는 작업이라는 것도 특징 중의 하나이다.
필자가 주목한 두 번째는 ‘고양이’다.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고양이(길고양이)다. 그런데 표현우의 고양이는 흡사 사람과 닮았다. 다양한 화제(話題)를 전달하는 메신저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사라지는 기억과 사건이 남겨진 공간과 불확실한 환경이 만들어낸 다양한 감정”을 대신하여 읊조리는 역할을 한다. 나지막이 들리듯 들리지 않게.
이 고양이들은 어딘가 쓸쓸하다. <집으로 가는 길>(2020)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뒷모습, <골목길과 고양이의 이야기(서울 북아현동)>(2015)에 묘사된 골목길과 계단 어딘가 조용히 자리 잡은 모습에선 그 쓸쓸함이 더욱 짙다.
더구나 현실에서의 고양이가 그러하듯 그림 속 고양이 또한 경계 없이 자유롭게 다양한 공간(골목, 어느 담장, 거리 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실체 없는 듯 다가온다. 존재함에도 존재감을 획득하지 못한 상실의 여운이 크다는 점에서 보면 소외적 대상이다. 마치 많은 것이 풍요로우나 정서적으론 그렇지 못한 우리네 삶처럼 말이다.
공간과 서민성, 고양이의 삼각관계는 과거의 기억과 불확실한 미래의 틈에 현재의 반응이 뒤섞여 구현되는 과정을 함축한다. 사라지고 있기에 꼭 붙들어야만 하는 그 무엇을 대신한다. 그건 기분이나 분위기일 수 있고, 혹은 물리적·정신적 영역일 수도 있다. 관람자들에 따라 저마다 다른 그 어떤 소중함일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그럼에도 살갑게 안거나 붙들고 싶은 것. 그것을 재현공간을 통해 각자의 마음에 저마다의 색으로 심어놓는 표현의 작업은 실수를 허락하지 않는 펜으로 일구는 세계라는 사실과 더불어 표현우 작업이 지닌 매력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 평화문화진지 3기 입주작가 개인전 2020>
‘경계’의 흔적을 그리기
성원선(미술평론) 2019
“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면 내 몸이 마음처럼 아픈가”라는 허수경의 시 구절처럼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긴 풍경은 기억에서 일어나 무감각하고 메마른 도시의 일상을 순간 드라마와 같은 장면 속으로 흐르게 한다.
표현우 작가는 풍경을 그리는 작가로서 실경(實景)의 묘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펜화의 세밀한 드로잉 기법을 해체하고, 심상의 풍경에 몰입하는 수채로 그려진 작품들이다.
「경계의 바람」, 「경계의 전조」, 「푸른 나무의 전언」은 수직의 띠처럼 보이는 면으로 화면이 분할된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필자는 그와 대화를 통해서 그가 장소와 밀접한 심상의 상태에 몰입하여 작품 하고자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가 ‘평화문화진지’라는 경계지의 방위시설을 창작공간으로 하는 물리적 조건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가 처한 시간의 상황과 장소로 만나게 되는 기억들을 창작의 근원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예술적 의지로 이해된다.
필자가 기억하는 그의 전작들은 부산의 범일동, 성북동의 성곽마을과 같은 삶터의 풍경들을 섬세한 펜화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그동안 거주하였던 장소를 배경으로 작업을 하였다. 부산 범일동의 굽이굽이 오르는 마을풍경을 그렸을 때, 골목길의 고양이에 자신을 투영하였고, 그리고 성북동의 성곽 마을의 오래된 담벼락과 산책길을 그려 넣은 그림에서도 고양이가 유유히 걸어 다닌다. 작은 화면 속에 자리 잡은 고양이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관객을 성곽 길로, 골목길로 이끈다.
세밀하게 표현된 그의 작업을 보고 있자면, 마치 그림의 장소로 보는 이를 안내하는 듯하다. 그림은 풍경과 연결되고, 장면은 이야기로 이어진다. 안내자로서 고양이는 범일동에서 성북동으로 이동하고, 그림 보기를 ‘걷기’의 방식으로 이끄는 주역이자 대상이다. 또한, ‘걷기’의 방식은 그의 그림 속의 풍경을 보는 시점을 시선으로 변화하게 하는 조형 언어이다. 그러한 ‘걷기’의 방식으로 여러 편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일상에서 지친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게 하고,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일상이 담긴 장소를, 기억의 한순간을 눈앞에 떠오르게 한다.
“경계와 결 그리고 시간”,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주제이지만, 경계, 결, 시간을 드러내게 하는 어떠한 표현보다 더 새로움은 고양이가 숲속의 어느 자리에 털썩 주저 않아서 웅크리고 있었던 작품 「경계에서」 이다. 더 이상 걷지 않고, 숨어있는 웅크린 모습으로 앉아있는 고양이는 필자에게는 어떠한 전조(前兆)처럼 느껴졌다. 그가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외로움, 두려움, 경계심, 불확실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의 힘 때문이었을까...
자각되는 경계, 층위의 혼돈, 시공간의 자국들은 그에게 새로운 자아의 한 장면을 투영하고, 그는 이제 타자로 그 장소를 배회하지 않는다. 스쳐보는 세상이 아니라, 느끼는 세상, 의식의 흐름을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그의 ‘웅크림’의 태도는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내었다.
종이 위를 흐르는 듯한 면들은 푸른 잉크로 칠해졌다. 흔히, 우리가 기억하는 만년필의 잉크와 같이 인디고블루가 겹겹이 칠해진 것이다. 행위로 그리기의 방법들은 마치 장소의 시간을 들춰내듯이 겹겹이 그려가기를 반복하면서 체득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펜화에서 수채화로 변화를 이룬 것뿐만 아니라, 먹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화했다. 그가 경험하는 경계의 색이 푸른색이었다는 것은 어쩌면, 기억의 저편이 아닌,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웅크림’을 통해서 발견한 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과거의 작업을 보면서 유사한 색이 필자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짙은 푸른색은 그의 심연으로부터 일어난 색이며, 또한, 그가 경계지 안에서 ‘웅크림’으로 발견한 것은 절세(絶世)의 의식이며, 보이는 것을 지우고 도시의 난잡함을 벗어난 비경(祕境)에 대한 작업적 구상이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절세의 비경, 절세(絶世)라는 뜻은 보편적으로 세상에 견줄 데가 없을 정도로 아주 뛰어난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비경(祕境)은 신비스러운 경지, 남이 모르는 곳,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자를 풀자면, 絶世는 세상과 인연을 끊음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祕境은 신비한 곳, 남이 모르는 곳으로도 쓸 수 있다, 즉, ‘絶世祕境’의 두 개의 해석은 보편적 언어와 주관적 언어의 차이이자, 세상의 심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조형 언어를 가지고 그 자신을 투영하는 창작의 근원을 ‘경계’라는 장소의 기억으로부터 깨워냈고, 자신의 몸과 의식 안에 웅크리고 있던 내재한 것들을 일으켜 세웠다.
여러 실험 중에도 변화의 시작으로 불 수 있는 작품 「푸른 나무의 전언」, 「경계의 전조」는 그의 작업실의 창밖에 보이는 공원의 한 귀퉁이에서 자라는 나무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전과 다른 선의 획들로 몸통이 만들어져 있다. 나뭇잎 하나 없고, 뿌리마저 드러나 있는 푸른 나무의 모습은 시간의 단면들을 드러낸 몸뚱이이다. 과거와 현재의 장소가 아닌, 심상으로 그려낸 풍경은 더 그 자신을 대신할 고양이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교차하는 어딘지를 알 수 없는 흔적의 장소를 그려낸다.
그의 이번 전시에서 놀라운 것은 전시 공간 안 유리창에 그려진 작품 「시간의 경계 (work from pm 14:35 ~ to am 07:57)」 이다. 그가 하루의 반나절 가량을 밤을 새워 그려낸 특정 장소를 위한 작품은 풍경을 넘어서 ‘웅크림’으로 주저앉은 시간의 단면들을 그려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인 유리면 너머 풍경을 바라보는 그는 현재의 공간으로부터 역사의 장소로 시점을 옮겨가며, 그리고 이미 지워질 수밖에 없는 시간의 경계를, 기억으로밖에 묘사할 수 없는 풍경을 장소에 각인하는 듯하다.
오늘의 그의 회화적 실험들은 시간의 흔적으로 작품에 남겨지겠지만, ‘웅크림’의 태도는 작가로서의 ‘경계’를 너머 내면의 확장을 이룬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구심과 원심, 평화문화진지 2기 입주작가 결과보고전 2019>
Review
걷다가 마주친 것
전시리뷰 이하운
산책을 마지막으로 해본 게 언제였을까. 일상에서 걸을 일은 많지만 대부분 땅 바닥을 보거나, 인상을 쓰거나, 해야 할 일에 골머리를 앓거나, 혹은 저녁거리를 고민하면서 걸었을 뿐이다.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 공상에 젖고 하찮은 것에 웃으며 나와 상관없는 것에 마음을 내어준 적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런 추억을 다시 곱씹으며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던 건 언제였을까. 우리는 가끔 주변의 일상에 쉽게 매몰되어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산다. 작고 보잘 것 없기에 무용한 것으로 치부되는 가장 소중한 것, 이번 전시 《푸른 산책》은 우리가 잠시 잊었던 걸 되찾아 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바다 같이 푸르스름한 빛이 벽을 채운다. <푸른 휴식>(2017)은 파란 수채물감을 몇 번이고 덧발라 진하게 발색한 바탕 위로 자연과 사람의 모습을 펜으로 그려냈다. 사람과 자연 사이에는 색의 구분이 없어 언뜻 보면 잘 보이지 않으나, 서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주위에 녹아 들어 함께 숨 쉰다. 자신의 존재를 치열하게 드러내는 도시와는 다르게, 존재들은 서로를 보듬어 지탱한다. 도시의 것을 강요하지 않는 곳은 얼마나 따뜻한가. 차갑게 느껴지던 푸른색엔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온기가 담겨있다.
표현우의 펜화 역시 도시와는 다른 풍경이 보인다. <경계의 저편(성곽마을 이야기)> 연작(2017-18)은 작가가 과거 실제 머물렀던 한양도성을 배경으로 한다. 길을 중심으로 한쪽엔 과거 성곽의 모습을, 반대쪽엔 작은 동네 풍경을 담았다.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공간은 마치 할머니 집처럼 빛이 바래 포근해 보인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다 잊혔을 거라 생각 했던 과거의 기억이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떨쳐내기 바빴던 감정과 고민은 어느새 추억이 되어 웃음 짓게 했다.
작가는 그 장소를 캔버스에 새겨내며 하나하나 마음속에 간직했다. 펜이 엇나가지 않도록 조심스레 획을 긋고, 혹시 놓치는 것이 있진 않을까 초조한 마음을 달래며 그렸을 것이다. 그런 작가의 사려를 상상해보니 다시금 추억되는 기억들이 부러웠다. 나도 누군 가의 추억 속에 남을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추억하고 있을까.
<푸른 산책, 삼각산 아트랩 개인전 2021>